이름·군번 달라 찾지 못한 무공훈장…70여년 만에 돌아왔다 :: 대전일보

“훈장을 받고 기쁜 마음이 컸지만, 부모님이 그동안 자식을 잃고 얼마나 가슴 아팠을까 생각하니 마음이 무거웠습니다.”

대전 중구 선화동에서 만난 故김현득 전사자의 동생 김현창 씨는 70여년 간 헤매다 돌아온 훈장을 보고 이 같이 말했다.

13남매 중 첫째였던 故김현득 전사자는 1951년 6·25 전쟁에 참여했다가 1953년 7월, 2년 만에 싸늘한 죽음으로 돌아왔다. 그는 당시 ‘백마고지’ 전투에서 승리를 이끌기도 했던 영웅이다.

전투에 참가해 뚜렷한 무공을 세운 자에게 수여하는 ‘은성화랑 무공훈장’이 1953년 6월 그에게 수여됐지만, 70년간 손에 쥐어보지 못한 채 떠돌아야만 했다. 실제 이름과 군번이 다르게 기록돼 있어 수많은 세월 동안 가족의 품으로도 돌아가지 못했던 것이다.

김현창 씨는 “‘김현득’이라는 이름이 ‘김현덕’으로 잘못 기록돼 있어 찾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심지어 군번도 달랐다”며 “당시에는 수기로만 기록했기 때문에 이런 일이 발생했던 것”이라고 말했다.

70여년 만에 훈장이 가족 품으로 무사히 돌아온 것은 국방부와 육군본부에서 시행하는 ‘6·25 무공훈장 찾아주기’ 사업 발굴이 끊임없이 이어져 왔기 때문이다. 전쟁 당시 ‘하사’ 계급이었던 故김현득 전사자는 현재 ‘상병’으로 기록돼 있다.

김 씨는 故김현득 전사자와 함께 군에 입대한 둘째 형을 떠올렸다. 김 씨의 둘째 형은 故김현득 전사자의 2살 터울 동생으로, 6·25 참전유공자다.

김 씨는 “훈장을 받은 후 둘째 형님 생각이 많이 났다”며 “둘째 형님은 훈장을 찾지 못한 것이 평생 한이 맺혔을 것”이라고 전했다. 또 김 씨는 당시 전사 소식을 들은 부모님에 대해 “두 명의 형제가 전쟁에 같이 나가서 조마조마 했을텐데, 거기다 전사를 했으니 평생 가슴에 안고 살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 씨는 첫째 형인 故김현득 전사자에게 ‘자랑스럽다’는 말을 연신 내뱉었다.

그는 “형님이 전쟁 승리를 이끌었고, 무엇보다 나라를 위해 몸을 바쳐 참으로 자랑스럽다”고 전했다.

지난달 21일 김 씨는 70여년 만에 돌아온 훈장을 중구청장으로부터 직접 전수받았다. 특히 김 씨는 훈장을 받을 수 있도록 끊임없이 발굴한 국가기관에 고마움을 표했다.

김 씨는 “70여년간 발굴에 힘써주신 조국과 육군본부, 보훈처에게 감사드리고, 무엇보다 훈장을 직접 전수해주신 박용갑 중구청장님께도 감사드린다”고 말했다.